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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어 표기법은 발음기호가 아니다

Page history last edited by Brian Jongseong Park 15 years, 9 months ago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외래어 표기법을 적용하는 것에 대에 반발하는 이유 가운데 매우 흔히 들을 수 있는 하나는 그 결과가 원 발음과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이 한국인의 영어 학습을 방해한다?

 

이런 비판의 대표적인 유형은 외래어 표기법이 외국어의 발음을 잘못 알려 외국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다음 글은 영어학습 관련 서적으로 유명한 재미 저술가 조화유씨의 글이다. 원문은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drwyj&folder=1&list_id=3862039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 영어 발음을 이상하게 표기하는 것은 일본 글자로는 영어 발음을 제대로 옮겨 적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MacDonald's(맥다아날즈)를 "마구도나루도"라고 표기하고 있다. 

 

 "마구도나루도"가 입에 익은 일본인들이 미국에 가서 배가고파 지나가는 미국 사람에게 "웨어 리즈 마구도나루도?"라고 물어봤자 미국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기 때문에 햄버거 사먹기 힘들다. 그러나 우리의 한글로는 "맥다아날즈"라고 정확하게 표기할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이런 훌륭한 한글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조오지"을 욕설같이 "조지"로,  "붓쉬"를 "부시"로 틀리게 쓰라는 건지 모르겠다.  붓쉬는 전쟁이나 일으키는 부시(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란 뜻인가?

 

이 외국어 한글 표기법이란 것을 따르지 않아도 벌금을 물거나 감옥에 가는 것도 아닌데 왜 모든 신문, 잡지와 책들이 충실하게 이 표기법을 따라서 우리 국민에게 일부러 틀린 발음을 가르치는지 정말 이해가 안간다. 우리 민족에게 한글을 선물로 주신 새종대왕께서 지하에서 크게 노하실 일이다.

 

(중략) 결론은 이렇다. 훌륭한 한글 놔두고  이렇게 외국어를 틀리게 표기하도록 강요해서 한국인의 영어학습을 방해하는 외국어 한글 표기법은 고치든지 아예 없애야 한다.

 

미안한 얘기이지만 근본적인 오류 투성이인 주장이다. "언어마다 다른 음운체계" 글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만 우리는 외국어의 발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음운체계에 맞게 받아들인다. 일본어는 세계의 음운체계 가운데에서도 음소 배열론적으로 매우 제한적인 경우에 속한다. 그러므로 영어의 McDonald's(미국 영어 발음으로는 [mækˈdɑnəɫ̩dz])를 일본어의 음운체계에 받아들이려면 상당한 변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글로 '맥다아날즈'라고 적는다고 영어의 발음이 정확히 표기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맥다나알즈'의 발음은 [mɛkt͈anaaldʑɯ]인데 국제 음성 기호로 표기한 것만 봐도 영어의 발음과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어마다 다른 음운체계" 글에서 설명했듯이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훈련된 귀로는 한국어식 발음과 영어식 발음이 차이가 거의 들리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는 착각이다.

 

한국어와 영어의 음운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영어 단어를 아무리 발음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해도 한국어 음운체계에 맞도록 음이 변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Bush([bʊʃ])는 한국어의 음운체계로는 발음이 전혀 불가능한 음들로 이루어졌다. 한국어에서 어두에 유성음 [b]가 올 수 없고 [ʊ]에 정확히 해당하는 모음이 없으며 어말에 [ʃ] 음이 오는 것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를 가지고 '부시'는 틀렸고 '붓쉬'가 맞다는 주장은 한마디로 오십보 백보이다.

 

"외래어와 외국어" 글에서 설명되어 있듯이 우리는 한국어로 이야기하면서 외국어를 써야 하는 일이 있고 이럴 때는 외국어를 한국어식 발음대로 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외래어 표기법은 이와 같이 외국어를 한국어 음운체계로 받아들이는 방법을 통일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국어 생활을 위해 필요한 규범이지, 외국어 학습을 위한 규범이 아니다.

 

외국어 공부를 해본 이들은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겠지만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한글로 발음을 흉내낸 표기를 보고 하면 안된다. 공부하는 외국어의 발음을 사전에 나오는 발음기호를 보며 한국어와 다른 외국어의 음운체계를 통째로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다. 한글을 발음기호로 사용하면 거기에 이끌려 외국어의 음운체계를 제대로 배울 수 없다. 한글은 한국어의 발음을 나타내는데는 유용하지만 애초에 외국어의 발음을 나타내기 위해 지어진 글자가 아니다. 우리는 외국어를 한글로 표기할 때 외국어를 그대로 적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국어의 음운체계에 받아들여져 한국어화된 형태를 적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종대왕을 운운하며 외래어 표기법을 비판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된소리 표기는 왜 못하나?

 

외국어의 한글 표기가 한국어화된 발음을 표기하는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외국어의 발음을 한국어의 발음에 대응시키는 방식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특히 쟁점이 되는 것은 외래어 표기법 제4항에서 k, p, t 등의 파열음 표기에 된소리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 규정이다(예외적으로 일부 동남아 언어와 같이 한국어의 예사소리와 된소리의 구별에 해당하는 파열음 간의 구별이 있는 경우는 된소리가 표기에 사용된다). 일부 출판사들은 외래어 표기법을 무시하고 자체적으로 '파리'가 아니라 '빠리', '도스토옙스키'가 아니라 '도스또예프스끼'와 같은 표기를 쓰기도 한다. 일본어의 표기에서 カ행 및 タ행을 어두에서 예사소리로 적게 한 것과 ツ를 '쓰'로 적게 한 것도 반발을 많이 사고 있다.

 

외래어 표기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여 자신이 인지한 외국어 발음을 주관적으로 거기에 가장 가깝게 한글로 적었다가 외래어 표기법에 의한 표기와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는 원 발음과 동떨어진 이상한 표기라며 자신의 표기를 고집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래어 표기법이 존재하는 이유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원음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원 발음을 최대한 가깝게 한글로 표기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이미 말했다시피 외국어를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발음기호를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은 외국어의 한글 표기, 즉 외국어를 한국어화는 방식을 통일하여 여러 표기의 혼재로 인한 언어생활의 불편을 줄이자는데 있다.

 

파열음의 된소리 표기를 예로 들어보자. 영어, 독일어, 스웨덴어 등 일부 언어를 제외하면 유럽 언어의 상당수가 쓰는 파열음은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된소리에 가깝게 인지된다. 그러나 이들 언어에서 파열음이 모두 된소리에 가까운 것은 아니다. 프랑스어의 Le petit prince를 발음에 가깝게 적으라면 '르 쁘띠 프랭스' 정도로 적을텐데, 프랑스어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들리는 p음이 한국어 사용자에게는 어떨 때는 된소리로, 어떨 때는 거센소리로 들리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영어처럼 거센소리를 주로 쓰는 언어에서도 파열음이 된소리로 날 때가 많다. 영어에서 s 뒤에 오는 파열음은 된소리로 나고, paper와 같은 단어에서 두번째 p는 된소리로 나는 경우가 많다. '말괄량이 삐삐'의 스웨덴어 본명 Pippi는 '피삐' 비슷하게 발음된다. 결국 된소리와 거센소리의 구분이 없는 언어들을 한글로 표기할 때 어느 경우에 된소리를 쓰고 어느 경우에 거센소리를 쓸지 따지려면 표기가 매우 복잡해지고 일관되게 하기도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외래어 표기법은 국제음성기호 [k, p, t]에 'ㅋ', 'ㅌ', 'ㅍ'를 대응시킨다는 간단한 해결책으로 통일된 표기를 가능하게 한다. 더구나 그 발음에 대한 정보를 구하기 힘든 언어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표기를 가능하게 한다. 만약 파열음의 된소리와 거센소리를 구분해야 된다고 치면 그린란드어에서 kalaallit의 k가 된소리로 발음되는지, 거센소리로 발음되는지 알아내기 전까지는 표기를 정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외래어 표기법은 되도록이면 원 발음에 충실하려는 목표와 일관되고 규칙적인 표기를 가능하게 하려는 목표 사이의 절충안이다. 이 두가지 목표는 상반되는 일이 많아 동시에 충족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외래어 표기법을 비난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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